망상창고, K

[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-] 귀를 때리는 기계음에 정신이 곧 나갈 것 같다. 다행히도 손에 들린 태형의 명함에 전화번호가 하나 더 새겨져 있다. 정국이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번호라는 사실이 속을 헤집지만,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. 전화를 걸자 다행히도, 없는 번호임을 알리는 차가운 기계음 대신 통화연결음이 흘러나온다. 그러나 그 ...

"...? 정국 씨..?" 태형의 입에서 나온 전정국의 이름을 듣는 순간, 얼음처럼 반듯하던 남자의 미간이 순식간에 형편없이 구겨진다. 그도 그럴 것이, 이 남자는 전정국이 아니니까. 그로 말할 것 같으면, 이름 전이안. 로열 패밀리 장남이 될 수 있을 하늘이 준 기회를 단 17초 차이로 전정국에게 빼앗겼다. 그대로 사이좋은 형제로 지내는 방법도 있었겠지만...

그러던 어느날 김텽, 퇴근하고 나서 언제나 그렇듯 모 기업 취업 공고 뜬 거 보면서 자소서 고쳐쓰고 있는데, 몇 시간을 랩탑 화면 들여다보고 앉아있어도 머리가 굳은 것마냥 영 안 풀린다. 아, 오늘은 텄네, 하면서 맥주나 사러 나가기로 한다. 괜히 손으로 죄없는 머리칼만 푸스스 헝클면서 슬리퍼 직직 끌고 계단 내려가고 있는데, 아래층 계단에서부터 누가 올라...